24 Nov Taxidermied-plastic
BITNA LEE 개인전
Taxidermied-plastic
2023.12.1. – 23.
Mon – Sat, 11-6 PM
GOP FACTORY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19길 7, 1층
BITNA LEE 개인전 《Taxidermied-plastic》
Plastic body, Plastic mind
멀어지고 달아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애타게 한다. 인간의 손은 절박하다. 미끄러져 도망가는 것을 향해 뻗어 있다.
삶에 무언가 주어질 때면 단 한 번도 충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때때로 부족함을 느낀다. 다 가질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진정한 의미의 온전한 향유를 맛본 이가 있는가?
어떤 만남은 일회적이다.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찰나다. 1초를 길게 늘여 봐도 소용없다. 당겨졌던 고무줄처럼 되돌아올 테니까. 아끼는 것들은 어김없이 튕겨 나간다. 우리는 오직 순간만 살아 있다. 그러곤 잊힐 것이다.
이 모든 건 끝없는 욕망의 장난이다. 욕망, 흔해 빠진 단어다. 하지만 이 말을 쓰지 않고 우리가 처한 난감한 굴레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인생이 굴러가는 법칙은 단순하다. 쫓고 쫓긴다. 주고 빼앗는다. 끌리면 소유하고 싶고 손에 넣으면 흩어진다.
강렬한 욕망은 현실을 왜곡한다. 왜곡된 현실은 가상이다. 누군가는 자기가 만든 가상 세계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은 그 속에 갇혔다. 사람 수만큼 다양한 트랩이 존재한다. 가짜라도 감각만큼은 리얼하다. 너무 리얼해서 못 빠져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헌팅 트로피를 그리는 작가를 만났다. BITNA LEE는 사냥꾼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도, 원하는 것을 잠시나마 손에 쥐는 쾌감도 잘 안다. 그래서 그릴 수 있었고, 그리면서 더 잘 알게 됐다. 그는 막연히 바라는 것을 그리는 단계를 넘어섰다. 사냥의 전제가 대상의 달아남이라는 것, 즉 애초에 달아나지 않는다면 뒤쫓을 이유가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욕망의 충족이 일시적인 걸 알기에 열심히 저장하고 박제한다. 자기만의 박제 방법을 고안해내기까지 했다. 그에게 회화는 헌팅 트로피를 그리는 행위이자 그 자체로 정교한 헌팅 트로피다. 스쳐 가는 상을 붙잡아 고정하고 복제하는 것 – 그것이 그림의 본질적 기능이라면, BITNA LEE의 작업은 기본에 충실하다. 그래서 의외로 담백하다.
박제의 의미를 되새긴다. 왜 박제할까? 순간의 생생함을 굳혀 거짓 영속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보존하여 집안을 장식한다. 박제된 대상은 죽었는데 죽지 않은 척한다. 눈 감아도 눈 감지 못한다. 박제된 동물과 인간. 그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섬뜩하다. 왜? 영혼이 빠져나가서 그렇다. 원래 시선을 교환하는 행위는 영혼끼리 하는 일이다.
야생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은 그림과 매력적인 인물의 그림. 얼핏 보면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상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심리와 동물의 사냥을 구경하는 심리는 같다. 보존액을 바른 동물 가죽처럼 방부 처리된 우상의 몸은 어여쁜 플라스틱 바디다. 광택이 돌고 알록달록하다. 어릴 때 갖고 놀던 바비 인형이 매끈한 플라스틱으로 돼 있던 것처럼. 하지만 그 대상에 대한 끌림은 순간이다. 싫증 난 아이가 인형을 내려놓는 것처럼. 플라스틱 바디는 뒤뜰에 파묻어도 썩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계속 모으고 쌓는다. 산더미처럼 예쁜 쓰레기가 불어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동화된다. 그렇게 생성된 기이한 세계는 BITNA LEE의 작업으로 펼쳐진다.
글 | 홍예지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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