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phite on Pink | 필연으로 향하는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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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으로 향하는 우연

Category
Art Book

책 소개
사랑에 관한 8가지 질문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멀리 떨어져서도 평생 서로를 그리워했던 이중섭과 이남덕, 서로의 독립된 세계를 존중하며 헌신했던 박래현과 김기창, 작업의 과정을 함께 한 알폰스 무하와 마리 히틸로바, 상대의 그림자와 질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와 로뎅의 연인 까미유 끌로델 등. 저자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통해 타인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타인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랑의 경험에 대해 탐구하고, 기록한다.

 

작가 소개

김지연
현대미술과 도시문화를 비평하고 시각문화 콘텐츠를 기획한다. 예술과 도시,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며 목격한 아름다운 장면의 다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했고, 2016년 제1회 그래비티 이펙트 미술비평 공모에 입상했다. 계간 문화예술비평지 <크리티크 M>의 편집위원이며 국제시사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미술무크지 <그래비티 이펙트>, 컬쳐아카이브 <핔>, 격월간매거진 <노블레스 맨> 외 다수 매체에 기고한다. 지은 책으로 <반짝이는 어떤 것>(2022), <보통의 감상>(2020), <마리나의 눈>(2020)이 있다.

메일 bloom_ing@naver.com / 인스타그램 paradisegreen__

 

책 속에서

사랑은 상대를 내 쪽으로 가까이 끌어올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여기에, 그는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만 우리의 애틋함을 이어갈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중섭과 이남덕, 유갑봉과 이쾌대, 베르나르 뷔페와 애나벨이 사랑을 지속해낸 것은 스스로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고자 마음먹는 일은 가까이 있고 만질 수 있기에 하는 사랑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평소에 자주 얘기하지만, 몇 번이고 더 해도 부족함 없는 말이 있다. 사랑은 부지불식간에 피어나는 열정으로 시작되지만, 사랑의 지속은 아무래도 의지와 결심의 영역이다.
– 사랑하겠다는 결심 중에서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김기창은 박래현을 7년간 미국에 유학 보내고 자신은 어린 자녀들과 한국에 남았다. 아내가 가져온 지혜의 보물을 자기도 골라 가지면 된다는 말을 하면서. 여러모로 애를 쓰며 살았던 박래현은 생의 에너지를 빨리 소진한 탓인지 일찍 세상을 떴지만, 남은 김기창은 그녀의 작품을 모아 유작전을 연다. 자신의 세계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 박래현과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 참여하는 사랑 중에서

 

이들은 여성이 나설 수 없는 시대에 묻히고 남편의 이름 아래 가려지며 ‘누군가의 아내’, ‘예술가의 뮤즈’라고 불렸지만, 사실은 타인의 무엇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자주적인 삶을 살아낸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들의 삶의 면면으로 알 수 있다. 이들이 타인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일구고 또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구축해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존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상대를 존경했기 때문일 테다.
– 보이지 않는 예술 중에서

 

여기 오랫동안 함께 한 역사 속 예술가 커플들이 있다. 보통의 연인들이 함께 쌓은 세계는 관계 안에서만 통용되지만 예술가들은 이것을 뒤집어 밖으로 꺼낸다. 세상에 통용되는 방식이자 타인도 알 수 있는 언어, 즉 작품으로 번안하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이기도, 한 사람만 예술가이고 배우자가 조력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같이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또한 모두 다르다. 그러나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이들이 도달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할 수 있을까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