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phite on Pink | YUNKYUNG JEONG [FINGER S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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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KYUNG JEONG [FINGER SPELL]

YUNKYUNG JEONG [FINGER SPELL]

2021. 9.29 – 10.23
Tue – Sat 12 – 7pm

Venue : GOP 성수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1가 656-600 1층

《Finger Spell》: 마모되지 않은 시간으로부터 온 편지

정윤경 개인전 《Finger Spell》은 역사의 선형적 흐름이 모종의 이유로 굴곡된 순간에 기인한다. 2020년 초, 당연했던 모든 것이 결핍에 다다랐을 때 작가는 엄습하는 무감각을 새롭게 감각하기 위해 온기 어린 주문을 외웠다. 막연한 시대에 손가락으로 그려진 디지털 드로잉은 핸드폰 스크린에 작게나마 남았고, 이들은 다시금 캔버스에서 거대한 선으로 구현되었다. 그에게 있어 “움직이는 손가락을 통한 작은 발열”이란 작가 자신을 휘감았던 시간의 두터운 증거였다. 그런가 하면, 작업실 방문이 어려웠던 상황으로 인해 작가의 집에서 만들어진 종이 위 드로잉은 다양한 크기의 콜라주 재료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도시 봉쇄령 시기의 런던에서 시작된 작가의 새로운 방법론은 철자를 읊고, 쓰며 마법을 부린다는 동사 ‘spell’을 현현한다.
그렇게 오래도록 이상했던 시간을 건너왔다. 지나간 시대가 점차 확고해지면서, 생활의 변화는 작업 방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세계관의 변화를 이끌었다. 정윤경의 이전 작업이 기하학적이고도 유기체적인 모티프를 근간으로 두어 풍경을 구축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시리즈는 정제된 풍경과 현실이 공존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축적되어 있던 세계에 자유로운 선의 운동성이 깃들고, 종이로부터의 낯선 감촉이 함께 드리워진다. 동시에, 벽을 가득히 채운 캔버스에는 내재되어 있던 엔트로피가 속절없이 쏟아져 내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머나먼 과거의 것, 그리고 만질 수 있을 듯 가까운 현재의 것은 서로에게 덧입혀진다. 즉, 비정형의 무언가가 건축적 성격을 띠던 기존 풍경 위에 전에 없던 레이어를 씌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온전히 분리된 단계로의 이행이라기보다 과거와 현재에 각각 지어진 두 개의 세계 사이 선로를 놓는 행위다.
이때 작품 외연에서 발견되는 물질적 흔적은 기이한 힘을 표출한다. 손가락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선을 보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살갗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된다. 터치스크린 위의 부드러운 네온 색상, 크로키처럼 그려낸 추상 너머에는 이 살갗을 찢고 상황을 헤쳐가려는 작가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아마 우연이 아니었을 작업의 변화는 이로부터 확실해진다. 결국 관객이 모티프의 철저한 반복과 뒤섞인 형태 뒤편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현실에 정면 대응하는 포털이다. 아른거리는 듯하더니 곧 뚜렷해진 이 포털은 물리적 한계를 딛고 작가와 작품의 만남을 가능케 했다. 이는 작가가 무너진 세계를 향해 뒷걸음질하는 대신, 현상을 응시하고 발화의 기회를 찾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환상은 보존되고, 현재는 한껏 응집된다.
여기에서 이전 시대의 유산은 결코 붕괴하거나 가라앉지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시대와 고여 있던 과거 사이에 미지의 통로를 둔다. 우리가 이곳에 진입하려는 지금, 미처 가닿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일순간 활성화된다. 그와 함께 전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관객은 마모되지 않은 시간으로부터 – 이때가 과거인지, 현재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 발송된 편지를 읽는다. 매혹적인 필체로 쓰인 이 글은 상보적 관계에 놓인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 상황에 엉켜 있던 실들을 풀고 시선의 방향을 바꾼 이들의 사례에 대해, 그들이 조합해냈던 수많은 포털과 통로에 대해 말한다. 여전히 마모되지 않는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치 주문에 걸린 듯이.

글 / 전민지 (미술비평)

Finger Spell 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90 x 160 cm, 2020
Finger Spell 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90 x 160 cm, 2020
Finger Spell IV,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220 x 180 cm, 2020
Finger Spell IV,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220 x 180 cm, 2020
Finger Spell V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20 x 90cm, 2020
Finger Spell V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20 x 90cm, 2020
Finger Spell V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20 x 90cm, 2020
Finger Spell V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20 x 90cm, 2020
Lieux 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40 x 30 cm, 2020
Lieux 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40 x 30 cm, 2020
Patting,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60 x 130 cm, 2020
Patting,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60 x 130 cm, 2020
Pebble I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60 x 130 cm, 2020
Pebble III, Mixed media on unprimed canvas, 160 x 130 cm, 2020
Finger Spell VII, Acrylic on unprimed canvas, 90 x 60 cm, 2021
Finger Spell VII, Acrylic on unprimed canvas, 90 x 60 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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